Page 67 - 월간HRD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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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교수
지식생태학자로 명명되는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공학과 교수.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생명원리를 각별한 관심으로 관찰해서 생존과 성장, 그리고 지식창조의 원리를 파헤치고 있다.
그 가운데 축적된 철학과 가치는 수많은 공기업과 대기업, 언론과 방송 등에서 공유되고 있고,
2018년 『독서의 발견』, 『지식생태학: 생태학, 죽은 지식을 깨우다』, 『체인지(體仁智)』를 출간하며 지금까지 80여 권의 저서와 역서를 집필하고 있다.
진한 향기가 진동을 한다. 그만큼 좋은 와인은 겉으로 자신 감도는 미각과 콧속으로 다가오는 향은 비슷하기도 하지만
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받은 사계절의 기운을 안 다르게 와 닿는 점도 많다. 마찬가지로 여인 역시 언제 어
으로 품고 있다가 은은하고 은근하게 드러낸다. 마찬가지 디서 만나느냐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로 매력적인 여인일수록 한 번 만났어도 그 여인의 이미지 다가온다. 같은 와인과 여인도 이럴진대 다른 와인과 여인
가 깊게 각인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은 탄생배경과 제조과정에 따라서 칼라와 스타일이 다종다
잠깐 만났지만 그 여인의 어투와 몸짓, 그리고 전반적으로 양하다. 저마다의 특성과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있는 와인
다가왔던 강렬하지만 은은한 아우라 뿐만 아니라 인간적 과 여인을 같은 와인과 여인이라는 범주로 일반화시키기에
면모가 선명한 이미지로 오랫동안 뇌리에 자리 잡는다. 는 무리가 따른다. 그만큼 저마다의 고유한 칼라와 스타일
여섯째, 좋은 와인일수록 감각적으로 남은 그 맛의 기억은 로 만나는 사람에게 언제나 색다른 감흥을 주기 때문이다.
코와 입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 “요리란 그 재료를 먹어 버림으로써 사라지게 하는 일, 음
한다. 기회가 되면 다시 마시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는 식을 먹는 이의 몸 안에 묻는 흥겨운 장례식이다.”
것은 당연한 와인 마니아의 욕심이다. 어떤 와인은 처음 마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그리고
셔봤지만 그 맛과 향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입안을 가득 연대에 관하여』에 나오는 말이다. 요리를 장례식에 비유한
채우면서 목구멍을 타고 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든다. 스쳐 메타포다. 와인을 포도로 만든 서양술로 정의할 때와 와인
지나간 와인은 언젠가 또 인연이 될지 모르지만 스며든 와 은 여인으로 은유할 때 와인에 대한 상상력의 차이는 천지
인은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연인으로 다가온다. 마찬 차이다. 세상을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보려면 세상을 바라
가지로 아름다운 여인일수록 다시 만나고 싶은 욕망이 사 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라지지 않는다. 첫 만남에서 받은 강한 인상은 묘한 매력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거나 기존 개념
을 풍기면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꼬달리 에 담긴 나의 신념을 바꿔서 재정의하는 것이다. 은유는 기
가 오랫동안 남는 와인일수록 그 향기가 가시기 전에 다시 존 개념을 재정의해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
마시고 싶은 충동을 자제할 수 없듯이 아름다운 여인일수 보게 만들어준다.
록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와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기보다 스스로 비유를 만들 수 있
인이든 사람이든 매혹적인 모습에는 인간적 자제력으로는 는 것만이 나의 앎이고, 내가 아는 것만이 나의 삶이에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숨겨져 있다. 또 만나 남이 만든 비유를 사용하는 건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것
고 싶게 만드는 끌림의 원동력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칼라 과 같아요.”
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자기다움의 DNA를 뿌린 이는 이성복의 『무한화서』에 나오는 말이다. 남이 만든 비
결과다. 즉 뿌림이 끌림을 낳는다. 독창적인 칼라나 스타일 유를 반복해서 사용한다는 의미는 남의 생각에 세 들어 사
에 끌리기 시작하면 이제 아예 쏠림현상이 발생한다. 마음 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만의 독창적인 사유를 개발하기 위
의 쏠림은 흐름에 따라 완전히 넋이 나가는 홀림의 경지로 해서는 남들이 사용하는 비유를 그대로 사용하는 수준을
다다르게 된다. 넘어서 나만의 독창적인 은유를 개발해야 한다. ‘비유’는 막
일곱째, 동일한 와인과 여인일지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힌 ‘사유’를 뚫어주는 ‘치유’다. 남과 비교하는 데 일생을 낭
만나는지에 따라서 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와인의 종류 비하다 비참해지지 말고 나만의 독창적인 비유를 개발해서
와 빈티지가 같은 와인이라도 누구와 어디서 마시느냐에 비전을 추구하자. 내가 고민하는 화두를 풀어내는 비유를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은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동일한 와 개발할수록 놀라운 상상력은 발동되고 미지의 세계로 다가
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날의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서 혀끝에 가는 거리는 좁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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