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월간HRD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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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MIND
와인은 ‘포도의 즙을 발효시켜 만든 서양 술’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결국 와인은 포도로 만든 서양술이다.
와인을 이런 식으로 정의하면 인간의 상상력은 여기서 그친다.
와인을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는 인식의 지평을 열어가려면 와인을 다르게 정의해야 한다.
와인을 다르게 정의하는 방법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은유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은유법은 겉으로 보기에는 닮지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닮은 점이 있음을 찾아내서
두 가지를 이전과 다른 관계로 연결시켜
색다른 상상력의 세계로 유도하는 수사학적 비유법이다.
밖에 없다. 숙성의 길을 포기하는 순간 졸속과 기교가 판 그윽한 와인 맛에 빠지듯 세월의 내공으로 사람을 품어주
을 치면서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숙 는 여인의 매혹적인 인간미의 마력에 빠져들면 그 누구도
성은 격을 높여 품격을 낳는다. 품격 높은 와인일수록 오랜 빠져나올 수 없다.
기간 숙성을 통해 포도가 잉태하고 있는 자연의 기운을 고 넷째, 좋은 와인일수록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데는 오랜
스란히 안으로 품는다. 그런 와인을 마실수록 그윽한 맛과 시간이 걸린다. 품격 높은 와인일수록 마시기 최소 몇 시간
향이 진하게 드러난다. 여인도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성숙 전에 열어 놓고 공기 중에 산소와 접촉할 시간을 줘야 한
한 여인일수록 함께 애기할 수 있는 체험적 공감대가 깊어 다. 그렇지 않으면 와인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 오랫동안
서 인간적인 매력이 묻어난다. 숙성된 와인과 성숙한 여인 병 속에 갇혀 있으면서 품고 있었던 깊은 맛이 겉으로 드러
은 그래서 공통점이 있다. 나기 위해서는 비교적 넓은 병에서 자유롭게 산소와 접촉
셋째, 혹독한 조건에서 자란 포도로 담근 와인일수록 와인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인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
의 맛이 그윽하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카리스 람이 마음을 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와인이 자신
마로 바꿔낸 코코 샤넬처럼 여인도 시련과 역경을 견뎌낸 의 진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마시기 전에 2-3시간을 산
여인일수록 그 아름다움을 형언할 수 없다. 지금 즐기고 있 소와 접촉하는 디캔팅(decanting)을 하듯 여인도 오랜 기간
는 풍경도 곤경이 낳은 자식이고, 내가 누리는 남다른 경 동안 정성을 들여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
력도 역경이 만들어준 소중한 선물이다. 환경이 열악할수 다. 급하다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록 포도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스트레스가 바로 열리지 않는다. 가장 말하기 좋은 시기는 상대방이 마음의
포도의 당도로 연결되어 형언할 수 없는 독창적인 와인 맛 문을 활짝 열 때다.
을 내는 원동력이 된다. ‘스트레스 받은’에 해당하는 영어 다섯째, 좋은 와인과 아름다운 여인일수록 꼬달리(caudalie)
‘stressed’를 뒤집으면 놀랍게도 ‘desserts’, 즉 디저트가 된다. 가 오랫동안 유지된다. 꼬달리는 불어로 ‘와인을 삼키거나
적당한 스트레스는 포도의 당도를 높여주는 보약인 셈이 뱉어낸 이후에도 계속되는 와인의 미각, 후각적 자극의 길
다. 마찬가지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자기다움을 찾아가 이를 측정하는 단위’다. 한 마디로 꼬달리는 와인을 마시고
는 여인일수록 베일에 쌓인 신비의 마력과 형언할 수 없는 난 후에도 빈 잔에 남아있는 와인 특유의 잔향(殘香)이다.
내공을 지닌다. 모든 ‘아름다움’은 앓고 난 사람이 보여주는 좋은 와인일수록 와인을 마시고 나도 그 진한 꼬달리가 빈
‘사람다움’에서 비롯된다. 깊은 맛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잔에 그대로 남아있다. 와인을 다 마시고도 빈 잔을 돌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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