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월간HRD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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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교수
지식생태학자로 명명되는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공학과 교수.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생명원리를 각별한 관심으로 관찰해서 생존과 성장, 그리고 지식창조의 원리를 파헤치고 있다.
그 가운데 축적된 철학과 가치는 수많은 공기업과 대기업, 언론과 방송 등에서 공유되고 있고,
2018년 『독서의 발견』, 『지식생태학: 생태학, 죽은 지식을 깨우다』, 『체인지(體仁智)』를 출간하며 지금까지 80여 권의 저서와 역서를 집필하고 있다.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타인의 사고방 ‘그의 책을 읽었다기보다 읽고 말았습니다. 읽고 만 이상,
식’에 상상으로 동조할 수 있는 능력, 이를 ‘논리성’이라 부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는 이상, 그 한 행이 아무래도 옳다
른다’ 고 밖에 생각되지 않은 이상, 그 문구가 하얀 표면에 반짝
우치다 타쯔루의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p113)』에 반짝 검게 빛나 보이고 만 이상, 그 말에 이끌려 살아갈 수
나오는 말이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내 생각만으로는 밖에 없습니다’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알면 빠른 시간 안에 다른 사람의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p35-36)』에 나
생각을 끌어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문제와 끝 오는 문장이다. 책은 멀쩡한 자아를 분열시키고 내 생각에
까지 씨름하다가 결국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생 심한 생채기를 만든다. 문제없이 평온했던 세상이 갑자기
각만으로 주어진 위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심한 문제 덩어리로 다가온다.
들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와서 다른 방도를 추구하지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책과 눈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악화되기가 일쑤다. 다양한 이 맞는 순간, 그 사람의 운명은 어디로 나아갈지 예측할
책을 읽으면 그만큼 내 생각과 다른 다양한 생각을 만난다. 수 없다. 책과 만난 우발적 마주침이 새로운 깨우침을 주고
‘내 머릿속에 들어온 오만가지 생각 중에서 몇 가지만 수태 가르침을 선물로 준다.
되어 새로운 생각으로 탄생한다. 생각은 본래 짝을 찾아 줄 ‘난 별 기대 없이 읽었다. 무심코 첫 장을 읽다가 뇌의 전두
기차게 맞선을 보고 추파를 던지고 사랑을 나누기 때문에 엽에 불이 반짝 켜졌고, 몇 장을 더 읽으니 폐에 산소공급
부모가 정확히 누군지 모른다’ 이 원활하지 못해졌고, 중간쯤 가서는 심장마비가 올 것 같
시어도어 젤딘의 『인생의 발견(p55)』에 나오는 말이다. 새 아 책을 탁 덮어버렸다. 한마디로 내 지적 편력과 모험이
로운 생각 자손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기존 생각은 낯선 생 조롱받아 마땅할 장엄한 충격이었다’
각과 사랑을 나눠서 생각을 임신해야 한다. 낯선 생각의 탄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읽고 이산하 시인이 서평에서
생은 낯선 생각과 접목될 때다. 책은 낯선 생각을 품고 있 쓴 글이다. 우리가 언제 이런 독서의 충격을 받아본 적이
는 위험한 사고의 보고(寶庫)다. 있을까. 2017년 문체부 독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책과 눈이 맞는 순간은 심장이 멎는 순간이다. 차라리 안 10명 중에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고 한다. 책
읽었으면 위험한 생각은 잉태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 을 읽어야 지금 여기서 안주하는 삶이 부끄럽다는 걸 느낀
지 않고 지금 생각대로 살아가는 삶이 더 위험한 인생이 아 다. 책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 지금과는 다른 삶으로 유도
닐까…… 위험한 생각을 품게 만들지 못하도록 막는, 아니 한다. 책을 읽어야 내 사고의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이전과
기존 생각을 방치하게 만드는 익숙한 책 읽기나 아예 읽지 다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않는 행위야말로 가장 위험한 생각이며 삶이다’ ‘우리가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들이 아니라 미래
유영만의 『독서의 발견(p225)』에 나오는 말이다. 책을 그냥 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읽은 게 아니라 읽어버렸고 읽고 말았을 때 책은 이미 내 미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
몸을 관통하며 심한 진저리를 일으킨다. 책을 읽기 전의 상 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태로 돌아갈 수 없다. 책을 읽기 전에는 오이였지만 책을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읽고 나면 피클로 바뀐다. 책을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김연수의 『우리가 보낸 순간, 시(p287)』에 나오는 말이다. 책
수 없다. 독서는 그만큼 위험한 행위다. 에서 만난 인두 같은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생각을 송두리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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