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월간HRD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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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을 전시해서 공간에 변화를 줄 수도 있죠. 이것 역시 기능성
이자 장식성입니다. 이처럼 예술과 기능은 얼핏 가까이 붙
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 예술과 기능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죠.
저는 작업을 하면서 한 번도 작품이 고가에 팔릴 것을 예상
하거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될 것을 의식해본 적이 없습니
다. 오직 저 자신에게만 충실했습니다. 게다가 한자에 더해
한글을 활용하면서 ‘내 정신과 색깔은 무엇인가?’, ‘나는 누
구인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며 제 사상과 철학을 작품에 담고
자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예술가는 기능을 넘어 본질에 입
각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술가는 자유를 추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
▲ 붕어는 바다를 모른다, 2016년 작품. 람이라는 동물은 조직을 관리하거나 조직 속에 있으면 정치
적이거나 비즈니스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틀
안에 얽매이고 내면에 그물이 형성되어 자유를 잃게 될 뿐
온전히 담기 위해서는 한글이 필요했습니다. 한글은 세계적 더러 반전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더욱이 포근함마저 느끼
으로 배우기 가장 쉽고 발음도 정확합니다. 무엇보다 보이 게 되면서 도전정신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는 세계와 가려진 세계를 아우르기에 적절합니다. 실제 제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예술가라면 힘들더라도 안
작품에는 무늬와 그림만 존재하지만, 그 안에는 한글이 담 락함, 혹은 편안함을 거부하고 고독함과 외로움을 친구로
겨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붕어는 바다를 모 삼아야 합니다. 고독함과 외로움은 풍부한 감성과 연결되
른다」입니다. 해당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에너지 며, 판을 깨는 창의력과 자유로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
를 그림으로 옮겨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새겼습니다. 이처럼 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없다면 예술가로 불릴 자격이
예술가는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작품세계에 변 없습니다. 예술가를 흔히 철학자라고도 얘기하는 이유도 이
화를 줘야 합니다.” 와 같은 측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반전으로 풀어내는 예술가의 자격 휴머니즘으로 그리는 예술가의 꿈
정병례 작가는 모든 작품에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담아 메 반전을 중시하며 끊임없이 진화해 온 정병례 작가. 하지만 그
시지를 전하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한다. 그 는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나눔의 중요
렇다면 그가 말하는 예술가의 자격은 무엇일까. 그는 예술 성에 대해서도 인지해왔다. 특히 지난 2018년 2월 삼청공원
가라면 항상 새로워야 하고, 진화해야 하며, 동전의 앞뒤가 앞 감사원 옹벽에 설치된 「삼청의 꿈」은 대표적인 정병례 작
바뀌듯 끊임없는 반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예 가의 재능기부 사례다. 그는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가
술가라면 조직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고독하고 외로울지 늘 갖고 있었던 나눔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언정 예민함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아름다운 삼청공원의 분위기와 다르게 감사원의 옹벽은 시
한다고 말한다. 멘트로 인해 딱딱하고 권위적인 느낌을 줍니다. 여기에 새
“먼저 예술과 기능의 관계를 살펴보죠. 제 작품 중 한글을 김아트 작품을 드리우면 분위기를 밝고 편안하게 만들 수
명확하게 새긴 것들이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새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청에 건의했
작품인 「하늘땅사람물불바람(세종대왕)」이 대표적입니다. 고, 여러 번의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의 의견도 참고해서 작
이것은 기능성입니다. 또 누군가 제 작품을 갖고 뿌듯해할 품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알려진 바와 같이 「삼청
수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기능성입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 의 꿈」이며 산이 좋아 산청, 물이 좋아 수청, 사람이 좋아 인
가에게 저를 소개하기 위해 제 작품을 활용할 수 있고, 작품 청을 의미하는 삼청을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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